[뉴스레터]ep.17 길이 보전하세

2026-04-30


2026년 4월의 편지


어제는 고객님 댁에 가구 배송을 갔습니다. 현장에서 추가로 살펴보고 체크해야할 부분이 있는 가구의 경우엔, 직접 배송을 가기도 하거든요. 사실 어제는 가구도 가구였지만, 특별한 고객님의 초대에 응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가구를 싣고 운전하며 지난 2월 코엑스 리빙페어에서 이루어졌던 저희의 만남을 복기했습니다.


“제 방에 미끄럼틀도 생길 거예요.”

“우와, 너무 부럽다. 가구 이모가 배송가면 미끄럼틀 태워줄 수 있어요?”

“……”

“왜? 그건 좀 어려워요?”

“음… 그때 쯤엔 침대매트를 깐 후일 거라서… 그게…”

“그럼 이모가 새 양말 가지고 가서 미끄럼틀 탈 땐 갈아 신을게. 그럼 괜찮아요?”

“음… 음… (골똘히 생각한 후) 네, 좋아요!”


b4c52a447e016.png


부모님이 인어피스 부스에서 가구를 둘러보는 동안 올해 여덟 살이 되었다는 어린이 고객님은 저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어요. 신중하게 생각하며 말에 진심을 담는 것이나 작은 약속도 허투루하지 않는 태도에 저는 그만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공간에 대한 철학과 규칙이 있는 점도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네, 어제 저는 그 고객님을 다시 만나고 왔어요. 가구 이모가 배송 오기를 기다렸다는 어머니 고객님의 코멘트에 맘이 갑자기 찌르르 하더라고요. 40대 중반이 되니 주변의 많은 것들이 눈물버튼이에요. 하지만 배송을 간 것이니 할 몫을 제대로 하고 눈물바람을 해서는 안되겠죠! 정신차리고 가져간 가구부터 배치를 했습니다.


가구 설치를 마치고 나자 어린이 고객님이 기다렸다는 듯 실로폰 가방을 들고 말했어요.

"저 실로폰으로 애국가 칠 줄 알아요. 다 외웠어요."

가구 이모에게 실로폰 연주를 들려주겠다니요. (하… 고객님 이러지 말아요, 저 아까부터 눈물을 참고 있오요…)

이건 진짜 여러분도 함께 들어야 해요. 너무 순수하고 아름답고 평화로와요.


👇 클릭하시면 연주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_해당 영상은 비공개 링크이며, 인어피스 뉴스레터 '인오피스' 구독자님들만을 위해 업로드 되었습니다.
_초상권은 어린이 고객님, 연주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연주를 몇 번이나 다시 들었습니다. 제가 받아본 가장 나긋하고 다정한, 말캉하고도 확실한- 환대였어요.


가구 만들다 보니 타인의 사적인 공간에 갈 일이 부쩍 많아집니다. 그때마다 여러 종류의 환대를 받는데요. 기다리던 가구가 와서 반겨주시는 것이겠지만, 그 이상의 멋진 것들을 받는 날들이 있답니다. 어제의 이 연주처럼요.


저를 위해 실로폰을 연주하는 고운 마음.

모든 게 로켓처럼 배송되는 때에 찬찬히 만든 가구를 구매하고 또 한참을 기다리는 마음.

조금씩 다른 나무의 결을 상상하고 내게 온 유일무이한 나뭇결을 사랑해버리는 마음. 


저는 고객님들의 그런 시간과 마음 덕분에 계속 가구를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언젠가 제가 몇 배로 다시 돌려드릴 수 있도록,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게요. 영상 속 애국가의 가사처럼 길이 보전하고 있겠습니다. 변함없이 여기서 나무를 만지고 한 조각의 평화를 수집하면서요.




이번 주에 길목집 시공이야기를 담으려 했는데 실로폰으로 연주한 애국가에 너무 감격한 나머지 미처 담지 못했습니다. 다음 편지에 꼭 (그 전에 인스타로라도...!) 담아 보내겠습니다.


아래 버튼을 클릭하시면 짧은 감상이나 피드백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남겨주신 글은 감사한 마음으로 아껴읽고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피드백 남기러 가기


2026년 4월  


연주에 다시금 감격하며,

인어피스 박소연 드림.

카카오톡 채널 채팅하기 버튼